하천경인

한강에 7억t 물 방류, 왜?

아쿠오 2008. 3. 20. 16:44

한강에 7억t 물 방류, 왜?

조선일보 | 기사입력 2008.03.20 04:10 | 최종수정 2008.03.20 04:24


"강물을 맑게"… 전국 10개 댐 '대량 방류 작전'

남한강 상류 충주댐에서 "쿠르르~ 쿠르르릉~" 굉음이 요란했다. 높이 98m의 콘크리트 댐 아래쪽에 난 네 개의 배수구(지름 6.5m)를 통해 댐에 가둔 물이 무서운 속도로 분출했다. 거센 수압과 함께 내뿜어진 물기둥의 충격파로, 댐 가장자리에 있는 2층 관리소 건물 외벽이 연방 부르르 떨렸다.

��지난 7일부터 수질 개선을 위해 한강 수계 5개 댐 물이 대거 방류되고 있다. 사진은 2006년 7월 소양강댐 수문을 통해 초당 2000t 규모의 물이 방류되고 있는 모습이다./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충주댐관리단 최병철 차장은 "배수구를 통해 댐 물을 1초당 200t씩 한강에 방류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 여의도 63빌딩을 한 시간도 못돼 가득 채울 분량이다. 소양강댐에 이어 국내 두 번째 규모(최대 저수량 27억5000만t)인 충주댐 저수 수위는 지난 7일부터 매일 1m씩 낮아지고 있다. 21일까지 계속된다.

◆한강댐 방류 프로젝트

지금 한강에서는 '깜짝 이벤트'가 벌어지고 있다. 3월 들어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는데도 강물이 갑자기 확 불고 수질은 과거 십여 년간 최고 상태로 좋아졌다. 수도권 주민 2000만 명의 식수원으로 쓰이는 팔당댐과 잠실상수원은 작년 이맘때보다 수질 등급이 각각 1~2등급씩 개선됐다. 과거 13년간 최고 수질을 기록한 것이다.

가 이달 초부터 충주댐을 비롯해 전국 10개 댐의 배수구를 활짝 열어 댐 물을 대량 방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강 수계(水系)에선 팔당댐과 소양강댐, 화천댐, 횡성댐 등 5개 댐, 금강 대청댐, 섬진강 주암댐 그리고 낙동강에선 3개 댐(안동댐, 합천댐, 남강댐)이 평소보다 방류량을 2~4배 늘렸다.

18일까지 이들 10개 댐에서 빠져나간 물은 한강 수계로 7억t 등 모두 8억여t. 상암월드컵 경기장 400개 혹은 63빌딩 1200개를 가득 채울 분량이다. 경기도 여주를 비롯한 남한강 상류지역은 방류 전보다 평균 30㎝, 서울 노량진과 잠실처럼 남한강물과 북한강물이 합류하는 한강 본류 구간은 평균 50㎝가량 수심이 깊어졌다.

수자원공사 이한구 차장은 "홍수기가 아닌 때에 이렇게 많은 물을 빼내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수자원공사는 작년 가을부터 '댐 방류 프로젝트'를 은밀히 준비해 왔다. 강물이 쉽게 오염되는 3~5월 봄철 갈수기(渴水期)의 하천 수질을 댐 물을 활용해 개선해 보자는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작년 말부터는 방류량을 날마다 조금씩 줄이는 방식으로 댐별 저수량을 예년 평균보다 20% 이상 늘린 뒤 이번에 쏟아 붓고 있는 것이다.

산하 한강물환경연구소 공동수 소장은 "이번 방류 프로젝트로 한강 수질개선 효과는 2개월쯤 갈 것"이라고 말했다.
◆4월쯤 한 차례 더 방류

수자원공사는 오는 24일까지 댐 물을 2억t 더 방류한 뒤 수질은 얼마나 개선됐는지, 하천 생태계엔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등을 조사해 발표할 계획이다. 4월에도 10억t가량 '2차 방류'를 실시할 계획이다.

이삼희 박사는 "이번 방류로 오랫동안 댐에 가로막히는 바람에 인위적으로 훼손됐던 원래의 물길 모양이 만들어지고, 강폭이 늘어나면서 어류의 서식 환경 또한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환경 전문가들도 대부분 이런 견해에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다. 한 생태 전문가는 "4월은 대부분의 어류들이 알을 낳는 시기여서 2차 방류로 물고기 알들이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갈 수 있다"며 "이런 부작용을 감수하면서까지 2차 방류를 실시할 것인지는 신중히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진 왜 안 했나?

정부는 1998년부터 작년까지 한강수질 개선을 위해 5조원이 넘는 돈을 썼다. 하지만 팔당댐은 1998년 3월 평균 COD 3.6PPM(2등급)에서 작년 3월 4.4PPM(3등급)으로, 잠실상수원은 3.8PPM(2등급)에서 4.5PPM(3등급)으로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우후죽순 늘어나는 수도권 인구와 공장 같은 오염원들을 감당해 내지 못한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이번 방류 효과는 놀랄만하다. 이렇게 쉽게 수질을 개선할 수 있는데, 그간 왜 이런 시도가 없었을까?

수자원공사 성영두 수자원개발처장은 "지금까지는 홍수조절과 용수(用水) 공급 같은 댐 본연의 역할만 중요하게 여겼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댐 물을 활용해 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해 왔다는 것이다.

이번에 8억t가량 댐 물을 방류함으로써 수공의 발전(發電) 수입은 수억 원쯤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평소엔 한전이 비싼 값을 쳐주는 시간대에 물을 흘려 보냈지만, 이번엔 발전 단가와 상관없이 하루 24시간 내내 물을 흘려 보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수입손실도 그간 댐 물 방류를 하지 않은 이유였을 수 있다.

◆외국 사례는

지난 5일 미국 글렌 캐니언(Glen Canyon)댐에서도 1996년과 2004년에 이어 세 번째 '인공 방류 프로젝트'가 실시됐다. 댐 건설 이후 훼손된 그랜드 캐니언 계곡의 생태계를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60시간 동안 평소보다 네 배가량 많은 2억5400만t의 물이 그랜드 캐니언 계곡을 따라 콜로라도 강으로 쏟아졌다. 이런 대형 방류가 있은 뒤로, 그간 강변에서 사라졌던 크고 작은 모래톱들이 새로 생겨났고, 수달 같은 보호동물의 발자국이 발견되는 등 생태계가 개선되는 조짐이 나타났다고 외신은 전했다.

[박은호 기자 unopark@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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